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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maiia) 이야기
그렇게 언니의 상처에 몰두해 긴 시간을 보냈어요.
아 내가 언니 인생의 마데카솔이구나,
언니의 상처에 새살이 솔솔 돋게 하는
그런 연고구나,
네버 엔딩 [연애] - 나의 연애는 끝.
나의 연애 시대를 마감해 준 언니, 여보에게 보내는 글.
달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며, 내 인생의 빛이고, 내 운명의 여인이며, 땅 하늘 바다를 통 털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고, 내 전용 희극배우이자, 노리개이기도 한, 내가 지구상에서, 태양계에서,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인 언니, 내 여보에게.
후회하지 않아 Non je ne regrette rien.
언니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인가요? 가을이었는데, 어느 레즈비언 사이트의 오픈 기념 행사였어요. 그 때 우리는 각자의 애인들과 함께였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레즈비언 사교계에서 활동을 했네요. 언니와 언니의 애인을 처음 봤을 때 ‘아! 참 예쁜 커플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 자주 청하고, 몇날 며칠을 붙어 놀고, 그 때 한참 열중해 있던 집시 카드 점으로 언니들 커플의 고민 상담도 해주고 그랬네요.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가족이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어요. 나는 나대로 내 연애의 고충과 아픔을 언니들에게 털어놓고,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랬지요. 좋은 친구였나 봐요. 그때는 같이 담배도 피우고, 고깃집에 삼겹살, 갈빗살 먹으러가고, 바에도 놀러가고 그랬어요. 기억나요? 그렇게 잘 지냈는데, ‘레즈비언 사이에 친구란 없다.’라는 말이 맞았던 건지, 어느새 우리는 애인이 되었네요. 그때 우리 얘기는 동시개봉관 드라마 같아 참 말을 꺼내기도 민망하죠. 그 얘긴 나중에 할머니가 돼서 다시 해요.
언니를 만나게 되기까지, 나는 몇 번의 연애를 했어요. 그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경험이었고, 내 역사였던 건데, 언니를 만날 때쯤에는 왜 그렇게 그 연애들 때문에 아팠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들과의 연애에 적응할 수 없었던 당시에도 아팠지만, 레즈비언인 나로 돌아왔을 때에도 나는 그 시절 때문에 고통스러웠어요. 나를 괴롭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레즈비언들의 시선이었어요. 흔히 ‘born lesbi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bisexual’에 가까운, 이성애의 역사를 가진 레즈비언을 보는 눈이요. 어떤 이들은 비난을, 어떤 이들은 불신을, 드러내놓고 보였지요. 그래서 나는 한동안 내 경험을 숨기고 부끄러워했어요. 그리고 그 시절속의 나를 혐오했고요. 그 때 참 괴로웠어요. 자신을 부정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 알았어요. 언니도 그들 중 하나였잖아요.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을 때 언니가 그렇게 가끔 불신과 비난의 마음을 갖고 한마디 할 때마다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언니가 만났던 이성애자 ‘hasbian’ 애인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믿지 못하는 마음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언니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한동안 나는 아주 지독한 이성애 혐오에 시달렸어요. 이성애와 이성애자에 대한 거부반응이 너무 심했지요. 티비 드라마도, 대중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사도, 이성애만 등장하는 영화도, 내 주위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성애 커플들도, 모두 내가 싫어하는 대상이 되었어요. 한동안 이성애자였던 나 자신도요. 그러다가 가랑비에 속옷이 젖듯이, 언니의 사랑에 점점 젖게 된 나는 ‘사랑’ 혹은 ‘연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나 봐요. 그러면서 차차 이성애와 이성애자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어요. 그이들의 다양성, 진실한 마음, 관계의 신뢰 같은 숨겨진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언니의 사랑이 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더 이상 이성애에 의한 존재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였을까요? 언니가 준 선물이네요. ‘사랑’과 ‘연애’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눈이 말이에요.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우리가 처음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밀착관계였어요. 나는 거리를 유지하고, 독립된 삶을 살고, 분리된 생활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던 사람인데, 언니는 아니었죠. 개를 좋아하는 언니는 개와 사람이 밀착되듯이 애인과도 그런 관계를 갖고 싶어 했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고양이가 사람을 대하듯 애인관계도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어느 틈엔가 우리는 함께 살고 있었고, 섹스는 하더라도 잠은 따로 자야한다고 생각하던 내가 언니와 함께 한 이불에서 자게 되었어요. 쉽지 않았죠. 우리의 생활을 위해서 나는 몇 가지를 실천해야 했어요. 나 혼자 쓰던 공간들을 우리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언니가 많이 도와줘서 수월했어요. 각자의 작업공간을 나누고, 공동의 공간을 만들고, 가장 문제였던 이부자리는 각자의 이불을 마련함으로 해결했지요. 이런 변화들이 단시간에 이뤄진 건 아니었어요. 삼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그렇죠? 내가 각자 이불을 덮자고 했을 때 언니는 무척이나 섭섭해 하고, 내 사랑을 의심했지요. 기억나요? 그리고 일하려고 문을 닫고 내 작업실로 들어갈 때에도 언니는 불안해하고, 서운해 하고, 심지어는 슬퍼했어요. 요즘은 언니가 공부방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순간이 더 많아졌지만요.
그렇게 우리는 달랐어요. 언니는 고양이를, 나는 개를 싫어했죠. 미래에 선택하게 될 반려동물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로 다른 동물을 원해 몇 번 다투기도 했어요. 그러던 우리가 어느새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공평하게 한 마리씩 들여 함께 살자는 계획을 세우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참 기뻐요.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고양이’과의 인간을 만나 사랑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개’과의 언니를 만나 변화를 겪게 된 것은 내 인생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아요. 언니 덕에 나는 관용과 여유를 배웠어요. 고마워요.
평생 네 똥꼬 핥아줄게 - 내 인생의 마데카솔
언니와 관계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는 숙제를 하듯이 언니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마음을 많이 다친 언니를 위로하고 보듬고, 때로는 새로운 규칙과 약속으로 바로잡으려고 하고, 마치 내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온 새 식구를 맞이하듯이 그렇게요. 나는 언니의 항우울제이고, 신경안정제이고, 상담가 이고, 치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몇 년을 살았어요. 언니는 차차, 눈에 띄게 변했어요. 깊게 자리했던 상처는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어요. 아픔이 적어지자 우리의 관계를 믿는 마음이 커졌지요. 그런 언니의 변화를 보는 것이 좋았어요. 그게 내 행복이었어요. 어느 순간 언니는 내 인생의 숙제이자, 성과이자, 작품이 되었지요. 그렇게 언니의 상처에 몰두해 긴 시간을 보냈어요. 아 내가 언니 인생의 마데카솔이구나, 언니의 상처에 새살이 솔솔 돋게 하는 그런 연고구나, 기뻤어요.
그러다가 오랫동안 방치했던 내 안의 흔적들을 보았어요. 그것들은 그냥 흔적들이었는데, 내가 발견한 순간부터 아픔을 동반한 상처가 되었어요. 언니에게 그 상처들을 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 몰라요. 나란 사람이 워낙 혼자 끙끙 앓다가, 혼자 해결하고, 다른 사람 도움 받는데 익숙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언니에게 그 아픔들을 보이고도 그게 치유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별로 없었어요. 그냥 그건 너무 오래된 묵은 흔적들이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고, 그리고 특히나 언니에게 내 역할이 마데카솔이었으니까, 언니는 아픔을 지닌 사람이니까, 내 아픔을 돌볼 여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요. 근데 그게 잘못 생각한 거더라고요. 언니에게 드러내고, 그 흔적들에 대해 얘기하고, 나는 어리광을 부리듯 몇 번을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그랬는데, 언니가 잘 들어줬어요. 물론 어떤 때는 서로 말하고 듣는 것이 서툴기도 해서 마음이 살짝 불편해 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위기는 금방 지나갔어요. 그렇게 언니를 통해 나를, 상처가 된 흔적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언니가 지구에 와서 만난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지요.
얼마 전에 내가 몸을 다친 바둑이를 걱정하면서 막 울었죠? 기억나요? 내가 예뻐하던 강아진데 허리를 다쳐서 다리가 불편하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같이 사는 다른 꼬마 강아지가 바둑이 배변을 돕는 건지, 꼬추를 핥아줬다고 그랬잖아요. 그 아이가 그렇게 바둑이에게 다정하게 굴더라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그 꼬마가 다친 걸 보니 나를 보는 것 같다고, 아무것도 모르던 천방지축 어린 아이였는데 몸을 다치면서 마음까지 다쳐서 이제는 눈빛이 달라진 겁에 질린 아이가 되었다고, 그런데도 아무도 그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내가 서럽게 막 울었잖아요. 근데 그때 언니의 한마디가 나를 감동하게 했어요. ‘여보한테는 내가 있잖아. 내가 평생 성심성의껏 여보 똥꼬 핥아줄게.’ 그랬죠. 너무 웃기면서도 가슴 깊이 고마웠어요. 그때 우리는 남은 인생 서로의 똥꼬를 최선을 다해 핥아주기로 약속했죠. 참 믿음직스러운 약속이에요. 고마워요.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 지 만 6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의 연애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서로의 ‘똥꼬를 핥는’ 시대가 왔어요. 격정의 흔들림도 없고, 서로의 마음을 시험하는 고약한 짓도 없고, 밀고 당기기의 연애기술도 없는, 미래를 얘기하고, 설계하고, 상상하고, 그림 그리는 관계가 되었어요. 그런 우리 관계가 좋아요. 오늘까지 나와 우리 관계를 믿어 준 언니, 내 여보 고마워요. 앞으로도 오래 오래 그렇게 예쁘게 함께 해요. 서로를 독거노인으로 만들지 말기로 해요. 연인으로, 부부로, 가족으로, 동반자로, 동지로, 둘도 없는 친구로 그렇게 살아요. 내 여보를 보내주신 삼신할머니께 오늘도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보 안녕~
2006년 11월 23일 우리가 만난 지 2123일 되는 날. 당신의 귀여운 강아지. 마이아.
* 출처 : 레즈비언 증언집 시리즈 ④
11인의 20․30대 레즈비언이 남기는 기록,
네버 엔딩(Never ending)연애,
펴낸날| 2007년 4월 30일,
펴낸이| 박김수진(박통),
펴낸곳| 레즈비언권리연구소


